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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아카이브

얼마 후면 할머니 생신이다. 올해로 여든여섯이시다. 할머니는 부지런한 사람이다. 젊었을 때도, 지금도 쉬지 않고 일한다. 작디작은 체구로 동네 이곳저곳을 다니며 폐지를 주우시는 데 서울 집에서 부천 본가에 갈 때 일부러 할머니의 동선을 따라 집으로 들어간다. 어김없이 그 위치에서 폐지를 줍고 계신다. 굳이 할 필요도 시키는 사람도 없지만 할머니는 개미처럼 폐지를 주어다 유모차에 싣고 나른다. 그렇게 번 돈은, 내가 집에 갈 때마다 기름값을 하라며 곧게 다려 주신다. 할머니의 마음을 전해져 거부하기 어렵다. 함부로 쓸 수 없어 차곡차곡 모은 돈이 제법 된다. 아마도 평생 못쓸 것 같다.

아버지와 작은 아버지가 있는 진천에서 이번 주 할머니의 생일잔치가 있다. 내가 모시고 갈 예정이다. 할머니 선물을 생각하다. 금반지가 생각났다. 원래 할머니에게 금반지가 있었다. 아주 오래된 반지였는데 몇 해 전 폐지를 줍다가 도둑맞았다. 어떤 젊은 남자가 음료를 건네며 접근해 반지를 잠시 빼도록 유도했는데 그걸 들고 도망쳤다(정말 나쁜 놈…). 할머니에겐 큰 사건이다. 물질적 가치도 아깝지만, 무엇보다 추억이 서린 반지였다. 지금도 당시 일을 말씀하신다. 그때마다 마음이 아프다. 이번 할머니 생신 선물로 할머니 선물로 금반지를 골랐다. 올해 금값이 크게 올라 생각보다 큰돈이 나갔다. 제작에 일주일이 걸렸다. 할머니가 태어난 날을 각인했다. 종로의 금은방에서 금반지를 받아 나오는 데 기분이 좋아졌다. 10월 내내 우울했는데 순간 웃음이 났다. 아마도 할머니가 떠오른 모양이다.

나는 할머니에 대한 사랑이 깊다. 고생하신 걸 알기 때문이다. 할아버지는 할머니와는 정반대 성품의 사람이었다. 어린 시절 내 기억에도 괴팍한 분이셨다. 남편 하나에, 아들 넷에. 가부장적 분위기에서 희생은 당연시됐으리라. 할머니에게도 꿈이 있었을 거다. 할머니는 옛이야기를 좋아한다. 어린 시절 할머니의 아버지 이야기부터, 아버지의 청년 시절 이야기까지 두런두런 꺼내놓으신다(아버진 별로 좋아하시진 않는다…). 기록해 두어야 한다는 생각에 2년 전부터는 녹취나 촬영을 하고 있다. 직무(?)를 살려 할머니의 생애사 아카이브를 구축하고 있다. 별도 서버를 두고 수집된 자료에 메타데이터를 입력하고 있는데 생각보다 일이 많다. 점점 야위어 가는 할머니를 보며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체감한다. 그래도 가깝진 않았으면 좋겠다.

할머니의 금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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