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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영화 ‘연애담’ 아쉬운 디테일 – 같이 걸을 순 없을까? (스포)

아래 리뷰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반가운 소재다. 영화를 보기 전 손짓부터 하게 된다. 우리 문화에서 레즈비언 소재 영화는 또 다른 금기였다. 사실, 적지 않은 퀴어(Queer) 영화가 있지만 절대 다수는 남성 중심의 게이 영화다. 내 기억이 맞다면 장편 퀴어 영화에서 레즈비언을 단독으로 내세운 작품은 두세편에 불과하다. 대부분 주인공은 남성이고, 여성은 주변이였다. 소수의 영역에서도 여성은 소수였다. 그만큼 우리 안의 보수성은 깊고, 은밀하다.

이현주 감독의 영화 <연애담>은 레즈비언 소재의 장편 퀴어영화다. 이현주 감독의 앞 선 두 편의 단편 <Distance>(2010)와 <바캉스>(2014)에 이은 세 번째 작품이다. 이 영화로 이 현주 감독은  ‘제17회 전주국제영화제’ 장편부문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받는다. 토드 헤인즈 감독의 <캐롤> 흥행 이후 레즈비언 영화에 대한 정서적 변화도 한몫 했을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반가움과 작품성은 별개다. <연애담>은 지나치게 통속적이다. 기존 남성 중심의 멜로극의 비대칭성을 그대로 수용하고 있다. 퀴어 영화의 자장에 있으나 내용과 설정은 그 밖에 있다. 극중 윤주와 지수의 성역할은 분명히 구분돼 있다. 답답할 정도로 소극적인 윤주, 당당하고 적극적인 지수의 캐릭터 설정은 그들의 첫 만남이 육체적 관계로 발전되는 첫 베드신에서도 노골적으로 위계화된다.

문제는 이런 작품의 캐릭터 설정은 감독의 무의식적 결과물이 아니다. 의도된 설정이다. 전주국제영화제 수상 이후 씨네21과 가진 인터뷰에서 이현주 감독은 “지수는 윤주의 미래고, 윤주는 지수으 ㅣ과거”라고 말했다. 소극과 적극, 과거와 미래를 가르는 감독의 기준은 ‘경험’이다.  극중 윤주의 캐릭터는 자신의 성적 정체성에 대해 혼란을 느끼는 존재다. 아직 ‘이것’에 대한 구체적인 경험이 없기 때문에 지수와의 관계에서 ‘대상’의 위치에 속한다. 반면 지수는 닳고 닳았다(?). 아버지와의 대화에서 드러나듯, 그녀는 이성을 사귄 적이 없다. 이는 지수가 유년기 부터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인지했고, 또 행동했다는 것을 시사한다. 따라서 지수의 적극성은 경험으로 체득한 일종의 자신감인 셈이다.

이런 비대칭성(다시 말해, 권력관계)은 100분의 상영시간 동안 두 인물의 위치로 상징화된다. 자취방 장면에서 공간의 물리적 주인이 누구냐에 따라 권력 배분을 다르게 한다. 또, 등산, 계단 장면에서 역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두 인물의 위치에 따라 누가 관계의 ‘키’를 쥐고 있는 가를 의식적으로 드러낸다. 이같은 비대칭성은 관객으로 하여금 사랑의 진정성을 의심하게 한다. 사랑, 그 자체로 발화되기보다 결핍을 충족하기 위한 욕망의 주체로서 서로를 대상화하고 있다는 느낌을 줄 수밖에 없다. 감독이 밝힌 것처럼 레즈비언의 사랑이라고 해서 이성애적 사랑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은 마음은 안다. 하지만, 기존 멜로극의 통속성을 가져올 필요가 있었을까하는 아쉬움이 든다.

같은 맥락에서 최근 개봉작 <캐롤>과 <아가씨>를 떠올리는 건 자연스럽다. <연애담>이 비대칭의 영화라면, 두 작품은 대칭의 영화다. 영화 <캐롤>과 <아가씨>는 공통점이 있다. 인물 설정이다. 두 작품에 등장하는 주인공 모두 인구사회학적 차이가 존재한다. 경제적 계급은 물론, 나이와 인종 등 모두 확연히 다르다. 둘 사이의 물리적 차이가 존재하고 있지만, 이는 사랑에 아무런 장애가 되지 못한다. 화면 안에서 어떤 차이를 드러내지 않는다. 이 같은 효과를 내기 위해 두 감독은 둘의 시선을 거의 동일한 크기, 구도로 배분한다. <캐롤>은 시선으로서, <아가씨>는 관계로서 완전한 데칼코마니를 이룬다. 때문에 관객은 둘의 사랑에 집중할 수 있고, 동시에 사회 폭력을 체감하도록 한다.

되고 싶은 것보다 하고 싶은게 많아요. 어느 순간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하고 싶을 걸 택할 겁니다. 삶은 짧고, 불확실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