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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영화 우리들, 봉합된 상처 – 남겨진 상처

정확히 세 번을 봤습니다. 근래 들어 압축적으로 한 영화를 반복해 본 것은 참 오랜 만입니다. 그만큼 <우리들>은 재밌습니다. 감동적이기까지 합니다. 이 영화를 주목하게 된 것은 순전히 기억력 때문입니다. 전, 사람이건 사물이건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합니다(거의 병적으로…) 떠올리지 못하면 메모라도 해놔야 하는데 그 마저도 귀찮아서 안하거나 해놔도 뒤죽박죽입니다. 그런데 몇 달 전 본 단편영화의 제목과 감독 이름 석 자는 이상하리만치 기억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영화 제목은 <콩나물>이고, 감독은 윤가은입니다. 인상 깊었던 작품이여서 당시 감독 이름을 검색해봤습니다. 대학원을 갓 졸업한 신인감독이라 잡히는 정보는 많지 않았습니다. 다만 제작 중인 작품 제목이 떴습니다. <우리들>. 기다림은 그렇게 시작됐나 봅니다.

영화 우리들, 올해의 오프닝

<우리들>은 도입부터 관객의 맘을 사로잡습니다. 영화는 화면 가득 채운 ‘선’(최수인 배우)의 말간 얼굴로 시작합니다. 이때 선이 직면한 상황은 오직 주변 아이들의 대화와 선의 표정을 통해서 관객에게 전달됩니다. 초등학교 4학년 체육시간. 아이들은 피구를 준비 중입니다. 시작에 앞서 리더로 보이는 두 아이가 편 가르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방식이 상당히 폭력적입니다. 가위바위보를 해서 이긴 사람이 우선권을 갖고 선수를 영입해가는 방식. 가혹한 시장에 놓인 선은 관객의 염려대로 누구의 선택도 받지 못한 채 홀로 운동장에 남습니다. 초반 상기됐던, 선의 표정도 걱정에서 희망으로, 다시 절망으로 내려앉습니다. 결국 깍두기 신세가 돼 억지로 팀에 합류됐지만 여기가 끝이 아닙니다. 게임이 시작되자마자 한 친구가 선이 금을 밟았다며 나가라고 윽박지릅니다. 선은 밟지 않았다고 호소하지만, 누구도 귀담아 듣지 않습니다. 결국, 금 밖으로 밀려난 선. 경기장 한 귀퉁이에 꽂힌 선의 몸을, 표정을, 절망을 카메라는 말없이 담아냅니다.

인상적인 도입붑니다. 올해의 오프닝이라고 해도 손색 없습니다. 이 영화의 놀라움은 전반부터, 후반까지 일정하고 규칙적인 흐름을 가지고도 아이들의 감정 변화를 밀도있게 포착한다는 점입니다. 아이들의 눈높이로 시작한 카메라는 단 한번도 시선을 돌리지 않습니다. 영화에는 많은 어른이 등장하지만, 그들의 시선에 아이들을 재단하지 않습니다. <우리들>의 영어 제목 <THE WORLD OF US> 뜻 그대로, 어른의 세계와는 무관한 아이들만의 세계를 그려냅니다. 그렇다고 해서 영화적 의미까지 어른과 무관한 것은 아닙니다. 외려 더 가깝지 않을까도 생각해봅니다.

어른들의 모르는 우리들의 세계

영화 <우리들>은 초등학교 4학년 여름방학 시작의 함께 선이 전학 온 ‘지아’(설혜인 배우)를 만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입니다. 둘은 첫 만남에서 호감을 갖고, 서로에 대한 비밀을 공유하며 그 어느 때 보다 반짝이는 여름방학을 보내게 됩니다. 그런데 둘 사이, 선을 왕따 시키는 주체인 ‘보라’(이서연 배우)가 끼어들면서 둘의 관계는 급속도로 냉각됩니다. 전학 오기 전 따돌림을 당했던 지아는 또 다시 왕따가 되지 않기 위해 선과 거리두기를 합니다. 선 역시 그런 지아가 못마땅합니다. 결국 여름방학 때 나눈 비밀들이 서로의 입을 통해 폭로되고 급기야 파국을 맞습니다. 그 뒤는 스포일러라 자세히 언급할 수 없지만, 선의 동생 ‘윤’(강민준 배우)을 통해 심플한 결론에 도달합니다. 너무나 단순해서 더더욱 와 닿는 듯 합니다.

영화 <우리들>은 그 자체로 매우 좋은 작품이지만, 아쉬운 게 없는 것은 아닙니다. 영화를 본 뒤 ‘찜찜함’ 같은 게 있었습니다. 보라 때문입니다. 윤가은 감독의 롤모델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입니다. 그 때문인지 작품 외연뿐 아니라 내연까지 히로카즈 감독 영화와 유사한 정서를 지니고 있습니다. 히로카즈 영화에는 상처받은 인물이 일관되게 등장합니다. 그리고 그 상처는 어떤 방식으로든 치유되거나 봉합의 가능성을 지닙니다. 이런 패턴은 윤가은 감독의 <우리들> 뿐 아니라 <손님>과 <콩나물>에서도 유사하게 보입니다. 윤가은 감독의 ‘기적’은 히로카즈의 ‘기적’이기도 합니다.

전달되지 못한 이야기, 치유되지 못한 상처

그런데 <우리들>에서 유독 보라의 경우는 예욉니다. 영화의 중반, 관객은 의외의 사실 하나를 얻습니다. 학원 원장과 엄마가 대화하는 장면에서 보라와 선이 과거 친구였단 사실입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보라는 선과 거리를 두게됐고, 급기야 선을 따돌리는 폭력의 주체로까지 부상하게 됩니다.

영화는 보라의 사유를 제공하지 않습니다. 다만, 학원 장면에서 추상적으로 제시될 뿐입니다. 추측하면 보라 역시 어떤 상처를 지니고 있습니다. 반에서 리더 역할을 하고 있지만, 역시 관계로 힘들어 합니다. 또 성적이 떨어졌을 때 학원 빈 강의실에서 남몰래 우는 여린 존재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영화는 보라를 가해자의 위치로만 마무리 합니다. 선과 지아의 상처는 치유의 가능성을 획득하지만, 보라는 빈 강의실에 방치된 채로 말이죠. 사실 절대적으로 기적이 필요한 존재는 보라입니다. 하지만 그녀에겐 기적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편집 됐을 거라고 짐작하지만 어딘가 찜찜한 결론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들>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영화입니다. 기대만큼, 훌륭하고 섬세한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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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고 싶은 것보다 하고 싶은게 많아요. 어느 순간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하고 싶을 걸 택할 겁니다. 삶은 짧고, 불확실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