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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영화 비밀은 없다, 의도된 불쾌와 낯섬

메가톤급 호불호 영화가 탄생했습니다. 이경미 감독의 <비밀은 없다>입니다. 흥행은 실패 했습니다. 그러나 실패를 단정하는 것은 성급합니다. 영화적 성취가 남았으니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평론가는 ‘호’, 관객은 ‘불호’ 입니다. 영화의 무엇이 그들을 매료시켰고, 또 혐오케 했을까요. 그들의 말처럼 <비밀은 없다>는 시대를 앞선, 혹은 자기과신의 영화일까요?. 극단적인 평가를 받고 있지만, 공통점이 없는 건 아닙니다. 독창, 참신, 창의, 괴기, 과장, 음울. <비밀은 없다> 리뷰를 장식한 일관된 느낌입니다. <비밀은 없다>는 상업영화지만, 흥행코드를 배치한 영화는 아닙니다. 감독의 의도가 아닙니다. 정확히는 하고 싶은 대로 밀고 나간 영홥니다.

평론가는 이 영화의 이 ‘뚝심’에 우선 찬사를 보냅니다. 아무래도 표준화되고, 관습화된 한국영화에서 기존 볼 수 없던 형식이라는 점이 유효했을 겁니다. 실제로 묘하고, 독특합니다. 동시에 불편함과 불쾌감을 자극하기도 합니다. 영화는 결정적 순간 마다 힘을 뺍니다. 진지한 장면에 우스꽝스런 음악을 깔거나, 기괴한 노래를 과장된 볼륨으로 배치합니다. 의도적으로 관객의 몰입을 깨는 겁니다. 캐릭터는 또 어떻습니까?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은 정상이 아닙니다. 하나 같이 무언가에 홀린 듯, 미친 듯, 취한 듯 비틀대로 뒤틀려 있습니다. 이들은 선악의 어떤 분류에도 수렴되지 못합니다. 천사인가 싶으면 악마성이 폭로되고, 악마인가 싶으면 선함이 재림합니다. 영화 <복수는 나의 것>의 류와 동진처럼 말이죠.

<비밀은 없다>는 넓은 의미에서 연극 요소가 쓰였습니다. 영화의 낯섬은 독일 극작자 브레히트의 소격효과를 인용한 결괍니다. 우리말로 “낯설게 하기”로 번역되는 소격효과는 관객이 내러티브에 포섭되지 않고, 비판적으로 바라보게 하는 연출방법입니다. 여기에는 어떤 의미나 개연성도 없습니다. 예를 들어, 극적인 장면에 의도적으로 무대 조명을 켜거나 무대 장치를 노출시킴으로서 관객의 감정이입을 막습니다. 심지어 극중에 배우가 관객에 말을 걸기도 합니다.

극의 신파성 보다 극을 통해 연출자가 관객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더욱 집중하게 만드는 겁니다. 원래 연극 요소 였지만, 현대에 와서는 영화에도 자주 쓰입니다. 프랑스 누벨바그의 기수인 장 뤽 고다르가 자신의 영화에 자주 인용하면서 다양하게 변주돼 사용됐습니다. 하지만, 한국에선 많이 쓰이진 못했습니다. 관객몰입이 흥행수단인 국내영화시장에서 당연, 낯선 형식일 수밖에 없습니다. <비밀은 없다>의 그 불쾌, 불편은 브레히트의 이론을 적극적으로 수용한 결과입니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의 성취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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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고 싶은 것보다 하고 싶은게 많아요. 어느 순간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하고 싶을 걸 택할 겁니다. 삶은 짧고, 불확실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