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

이건희 성매매 의혹보도, 박유천에겐 있지만 이건희에겐 없는 것

박유천에는 있고, 이건희에는 없는 게 있다. 돈? 당연하다. 명예? 그것도 맞다. 또 하나 당연하게 없는게 있다. 보도다. 지난 6월 13일 JTBC가 <박유천 성폭행 혐의로 피소>라는 기사를 단독보도 하면서 본격적인 취재경쟁이 촉발됐다. 방송, 신문, 인터넷 할 것 없이 대부분 언론이 이 싸움에 가담했다. 보도 직후를 기점으로 7월 26일까지 언론사들이 포털에 송고한 기사 수만 8천96건에 달한다. 이 과정에서 언론은 ‘아니면 말고 식’의 무책임한 기사를 선정적으로 쏟아냈다. 그리고 경찰은 지난 7월 15일 박유천의 성폭행에 대한 무혐의 결론을 내렸다.

정확히 일주일 후 또 한건의 스캔들이 터졌다. 이번에는 더 큰 거물이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보도의 주체는 인터넷 독립언론 뉴스타파였다. 지난 7월 22일 뉴스타파는 <삼성 이건희 성매매 의혹.. 그룹 차원 개입?>이란 기사를 내보냈다. 이건희가 우리사회 미치는 영향이 막강한 만큼, 보도의 반향도 컸다. 보도영상은 사흘만에 910만 건의 클릭수를 동원했다. 네이버, 다음 등의 포털에서는 보도 당일 ‘이건희’와 ‘뉴스타파’ 검색어가 종일 1, 2위권을 점유했다. 그러나 언론은 달랐다. 인기검색어라면 썩은 양잿물도 마실 것 같던 언론이 이건희 성매매 의혹 사건 만큼은 침묵했다.

박유천에는 있지만 이건희에게는 없는 것

공영방송 KBS의 경우, 관련 단신을 쓰고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기사를 삭제했다. 이에 대한 비판여론이 들끓자 재송고하는 촌극도 벌였다. 이뿐이 아니다. 선정성이라고 하면, 어디에도 빠지지 않는 TV조선, 채널A, MBN 등의 종편은 이건희 성매매 의혹과 관련해 단 한 건의 기사도 보도하지 않았다. 그럼, JTBC는 다를까?. 사실 이 의혹과 관련해 가장 주목 받은 언론사는 JTBC다. 홍석현 중앙일보·JTBC 회장이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처남이기 때문이다. 관심 받는 건 당연했다. 그럼에도 손석희를 믿었다. 하지만 기대와 달랐다. JTBC는 이 사건을 후반에 단신보도하는 데 그쳤다. 그마저도 취재 없는 단순 인용이었다. 이번 사건을 심층보도한 언론사는 한겨레, 경향신문, 오마이뉴스, 미디어오늘 정도였다.

언론사가 이건희 성매매 의혹 사건을 다루는 방식은 세 가지다. 침묵, 취재, 윤리다. 첫 번째와 두 번째는, 앞서 언급한 대로다. 하지만 세 번째는 약간 다르다. 그들은 나름의 방향과 논조로 새로운 ‘프레임’(Frame)을 짠다. 막강한 영향력과 인력을 지닌 공영방송 KBS와 연합뉴스이기에 가능하다. 이들이 프레임으로 내세운 것은 ‘취재윤리’다. 이건희 성매매 의혹 동영상 자체가 불법적인 과정을 통해 얻어진 범죄의 결과물이기 때문에 이를 활용한 보도는 윤리에 어긋난다는 논리다. 이를 근거로 이건희 회장 역시 피해자라는 프레임을 설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사건의 본질이 아니라는 건 누구나 안다.

본질 보다 범행, 보도보다 윤리, 언제부터?

KBS는 그동안 단신으로 처리하던 사건을 지난 7월 25일 <심층리포트, ‘이건희 동영상’ 수사 방향과 처벌 수위는?> 라는 2분 12초짜리 기사를 내보냈다. 주요 내용은 성매매가 아닌 몰카에 초점했다. 두 개의 사안이 동일하게 다뤄져야 하는 보도 임에도 KBS는 몇 년 전 발생한 이병헌 몰카 사건을 언급하며 본질을 윤리로 옮겼다. 기계적 중립성 조차 없었다. 연합뉴스도 마찬가지였다. 연합뉴스는 보도 당일 <이건희 동영상 누가, 왜 만들었나…협박용 기획한 듯> 이란 제목의 기사를 생산하며 일찌감치 ‘몰카’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선정성이라는 단어도 이 때부터 나왔다.

여기에 취재도, 윤리도, 침묵도 않는 방송도 있었다. JTBC다. 손석희 앵커는 지난 7월 25일 본인이 진행하는 앵커브리핑<루쉰이 그렇게 말했으니까…>에서 모호한 논리를 폈다. 고민이 묻어나는 4분이었다. 뒤에 위화의 산문집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를 언급했지만, 본론과 동떨어진 내용이었다. 눈 여겨볼 대목은 여기다.

“뉴스룸은 비록 완벽하진 못했어도 해당 기업에 대한 문제제기성 보도를 힘닿는 한 게을리 하지 않으려 노력해왔습니다. 저희들이 이번 사건을 두고 고민한 것은 단지 뉴스의 가치였습니다. (…) 동시에 이 사건을 보도함에 있어서 단지 그것이 힘 있는 대기업 회장의 문제냐, 아니냐를 떠나 무엇이 저널리즘의 본령에 맞느냐를 놓고 고민할 수 있는 자유도 있어야 할 것입니다.”

무슨 의미일까?. 다시 듣고, 또 들어도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다. 이유는 하나다. 주어가 없기 때문이다. 뉴스의 가치와 저널리즘의 본령이 지칭하는 대상, 그 주체가 가려져 있기 때문이다. 알아도 모르고, 안다해도 말할 수 없는 그 무엇. 화자가 손석희라고 해도 어쩔 수 없는 그 무엇. 이건희 성매매 의혹 보도를 감싸고 있는 그 절대적인 무엇 말이다. 손석희 앵커의 브리핑이 슬프게 들린다.

언론의 위기 아닌, 저널리즘의 위기

언론의 위기는 줄곧, 미디어 환경의 변화로 이해돼왔다. 다채널 시대,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의 몸부림으로 이해돼 왔다. 그러나 그것은 실체가 아니다. 위기는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 있다. 진짜 ‘위기’는 언론이 아니라 저널리즘이다. 이번 이건희 회장 성매매 의혹은 단순 범죄고 스캔들이 아니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이번 사건은 실종된 언론에 대한 심판대다. 저널리즘이 위기라고 하는 시대, 뉴스타파의 성장 이면을 곱씹어봐야 한다.

되고 싶은 것보다 하고 싶은게 많아요. 어느 순간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하고 싶을 걸 택할 겁니다. 삶은 짧고, 불확실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