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저널리즘

[책 리뷰] 나는 어떻게 쓰는가? – 안수찬, 기자가 몰입한 만큼 독자는 공감한다

 

블로터tv 캡쳐

<나는 어떻게 쓰는가>(씨네21북스 펴냄)는 각 분야 문장가 13인의 글쓰기 노하우를 묶은 책이다. 시중 글쓰기 책이 많지만, 이 책은 다르다. 글쓰기 과정 중간에 있지 않다. 형식이나 기술보다 어떤 ‘태도’에 집중한다. 글을 쓸 때 나는 어떤 태도로 임하고 있는가?. 이는 글쓰기의 본질과 같다. 좋은 태도가 없다면, 좋은 글은 나올 수 없다. 이것은 진리다. 그렇다면 좋은 태도란 무엇인가?. 저자 안수찬은 좋은 글은 좋은 자아를 갖췄을 때 나올 수 있다고 조언한다. 그는 “글을 잘 쓴다는 것은 자아를 거리낌 없이 펼쳐보일 광대한 영지를 갖는 일”이라고 말한다. 좋은 자아는 대상을 대하는 태도의 윤리다. 성찰이고 사유다. 6가지로 정리했다.

 

1. 끊어쳐라

주어 – 목적어 – 서울어의 기본 단어로 하나의 문장을 완성해야 한다. 문장을 끊어치려면 ‘리듬’을 발견할 수 있다. 글의 리듬에 있어 정해진 악보는 없다. 안수찬이 즐겨쓰는 리듬은 ‘짧게 – 길게 – 조금 길게 – 아주 길게 – 다시 짧게’ 의 방식이다.

소설가 김훈은 끊어치기로 유명하다. 대부분의 글이 짧고, 간결하다. 그럼에도 힘이 있다.  글에 강력한 중력이 작용한다. 한 번 읽기 시작하면, 발을 떼기 쉽지 않다. 무작정 끊어친다고, 김훈과 안수찬이 되는 건 아니다. 리듬을 만들기 위해서는 앞, 뒤의 박자를 살펴야 한다. 화음이 중요하다.

 

2. 설명하지 않고 보여줘라

보여 주려면 디테일이 필요하다. 디테일은 꼼꼼하게 살펴야 보여줄 수 있다. 이는 눈설미가 아니라 의지, 의도, 계획이 있어야 가능하다. 상대의 말과 눈빛, 표정, 행동, 시공간을 함께 적으면 보여주는 기사를 쓸 수 있다. 디테일이 눈에 들어오지 않으면 더듬이가 부족하다는 의미다. 부족한 더듬이를 보충하려면 시선의 확장 단계를 염두하면 도움이 된다. 하나의 인물에서 군중으로, 작은 사물에서 큰 공간으로, 찰나의 에피소드에서 인생의 역정으로 펼쳐나가는 방식이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천사도 디테일에 있다. 악마와 천사의 구분은 결국, 무엇을 보는가다. 안수찬은 대상을 의지, 의도, 계획을 통해 수립한다. 그리고 이런 목적은 미시에서 거시로, 또 거시에서 미시로 옮기는 형식을 통해 달성할 수 있다. 영화를 연상하면 쉽다. 영화의 기본은 쇼트다. 고전적인 장면 구성은 풀쇼트에서 클로즈업으로 다시 클로즈업에서 풀쇼트으로 이행하는 과정이다. 또 두 개의 쇼트가 상이하다고 해서 장면 구성을 할 수 없는 건 아니다. 개연성 없는 쇼트도 제3의 의미를 만들 수 있다. 이를 영화용어로 ‘몽타주’ 기법이라 한다. 글에도 몽타주가 필요하다.

 

3. 기사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

생명을 불어넣는 일은 ‘이력정보’를 전달하는 것과 다르다. 이상하게도 기자들은 이름, 직업,. 성별, 고향, 거주지, 소득 등에 집착한다. 이런 것들을 나열해야 그 사람을 잘 설명할 수 있다고 믿는 것 같다.

여기에 저자 안수찬은 생텍쥐페리의 글을 사례로 든다.

어른들에게 새로 사귄 친구에 대해 이야기 하면 그들은 가장 중요한 것은 도무지 묻지 않는다. “그 친구의 목소리는 어떻지? 무슨 놀이를 제일 좋아하지? 나비를 수집하니?” 이런 말은 도무지 묻지 않는다. “나이가 몇이나 되지? 몸무게는 얼마지? 그 애 아버지의 수입은 얼마나 되지?” 하고 묻는다. 그제야 그 친구가 어떤 사람인지 알았다고 생각한다.

생텍쥐페리, <어린왕자>

저널리즘 글쓰기는 계산에서 출발했다. 최소한으로 최대한을 전달하는 게 목적이다. ‘스트레이트’가 이같은 목적에서 탄생했다. 초기 전자통신시대에서 스트레이트는 효과적이었다. 기술적 제약으로 통신시간이 짧고, 복잡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기자 한 명이 전달할 수 있는 정보의 양은 무한대다. 어디서든 네트워크만 연결돼 있다면 양은 중요하지 않다. 그럼에도 스트레이트가 유지되는 건, 속보 때문이다. 그러나 속보는 SNS 시대에선 무용하다. 무엇이 중요한 가는 자명하다.

 

4. 평범한 말에서 탁월한 문장을 찾는다

좋은 문장은 책에 있지 않다. 평범한 사람의 평범한 말에 있다. 말을 그대로 옮기면 방대한 문장이 된다. 평범한 사람의 말은 정연하거나 논리적이지 않는다. 기자는 그 말의 본질을 흐리지 않는 선에서 정돈하고 압축해야 한다. 이때 말의 요지를 압축, 정돈하면 안된다. 그렇게 하면 글이 죽는다

인터뷰는 픽션이 아니다. 논픽션이다. 정해진 이야기가 없다. 모든 건 사실에 기반한다. 하지만, 인터뷰를 하기전 기자는 머릿 속에 픽션을 그린다. 인터뷰이는 도덕적으로 무결해야 하고, 교훈적이어야 한다. 인터뷰 전 강박에 휩싸인다. 인물은 진부함에 매몰된다. 갇힌 글은 그렇게 만들어진다.

 

5. 담담하게 써라.

글 가운데 가장 높은 글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글이다. 즐겁고, 기쁘게, 슬프고 애달프게 만드는 글이 위대한 글이다. 기사에서 그런 성취를 이뤄내려면 반드시 지켜야할 철칙이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단어부터 문장까지, 철저하게 담담하게 써야한다. 울리고 싶은가 . 울지마라. 웃기고 싶은가 웃지마라. 필자가 먼저 감정을 드러내거나, 감정이입을 부추기는 문장을 쓰면, 독자는 울고 싶다가고 눈물을 거두고, 웃고 싶다가고 미소를 지운다.

안수찬의 글쓰기 노하우 중에서 가장 마음에 와닿는 부분이다. 이는 핵심을 먼저 말하고, 부가적인 것을 이야기하는 ‘스트레이트’의 형식이기도 하다. 이런 형식은 정보 전달에는 효과적이지만 사람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 생명이 짧은 글이다. 글을 읽으며 이안 감독의 <색, 계>의 마지막이 떠올랐다. 저항군의 일원이었던 ‘왕치아즈'(탕 웨이)가 친일파 정보부장인 ‘이'(양조위)의 암살계획을 발설하고, 결국 처형 당한다. ‘이’는 집으로 들어오고, 왕치아즈의 침대를 조용히 쓰다듬는다. 아무런 표정도 대사도 없다. 방 저편, 이의 아내와 부인들의 마작 소리만 요란하다. 감독은 이 장면에 슬픔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저 말없음, 그리고 쓰다듬이 전부다. 이 두 개로 가늠할 수 없는 비극과 슬픔을 전달한다.

 

6. 통찰을 담아내라

‘객관적 기사’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 진실의 총체를 담으려 애쓴다는 차원에서 객관적 기사를 지향할 수 있지만 실제로 그런 객관을 구현하는 일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객관은 중립의 다름이 아니다. 중립은 어떤 정치적 의도에 함몰되지 않는 나름의 회피 기술이다. 하지만 모든 글에는 의도가 있다. 의도가 없다는 건, 생명이 없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글을 쓴다는 건, 생명을 불어넣는 과정이다. 흔히 글쓰기를 출산에 비유하는 것도 고통에 비례하는 창조가 있기 때문이다. 객관과 이별을 선언하고, 의도와 만나자. 그것이 솔직한 글쓰기다.

 

되고 싶은 것보다 하고 싶은게 많아요. 어느 순간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하고 싶을 걸 택할 겁니다. 삶은 짧고, 불확실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