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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영화 [걸어도 걸어도], [태풍이 지나가고], ‘그 장면은 왜 마음을 울릴까?’

그의 영화는 새롭지 않다. 형식과 구성이 다를 뿐 같은 이야기가 반복된다. 그럼에도 그의 영화가 관객에게 늘 새롭게 와닿는 건 보는 이들의 마음 때문이다. 같은 것을 보더라도 결코 동일할 수 없는 사람의 감정, 순간, 지점들. 그래서 그의 영화는 끝난 이후 가장 빛난다. <태풍이 불어도>(2016)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전작 <걸어도 걸어도>(2006)와 유사하다. 물론 이야기로 이어지진 않는다. 완전한 별개다. 같다는 느껴지는 건, 구성때문이다. 여기엔 그의 경험이 바탕됐다.

영화 <걸어도 걸어도>는 집안의 장남이 사고로 죽고, 세번째 기일을 맞이한 가족의 이야기다. <태풍이 지나가고>는 이혼 후 시댁인 키키 키린의 집에서 우연하게 하룻밤을 맞게된 가족 이야기다. 두 작품 모두 상실 이후 순간을 하루의 시간에 담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때문에 이야기는 지극히 잔잔하다. 2시간의 러닝타임 동안 장면은 식사와 대화가 전부다. <걸어도 걸어도>는 좀 더 노골적이다. 전체 시퀀스가 4~5개에 불과할 정도로 장면전환이 적다. 영화적 시간이라고 하는 것은 해가 지고, 달이 지고, 다시 해가 뜨는 일상의 반복과 다름없다.

걸어도 걸어도
영화 <걸어도 걸어도>의 마지막 장면. 아버지와 어머니가 묻힌 장소에 아들 내외가 다녀갔다. 아들이 사라진 프레임을 카메라가 물끄럼히 바라본다.

히로카즈 영화의 탁월함은 일상에서 삶의 진리를 뽑아내는 통찰이다. 이는 생과 사에 대한 감독의 깊은 사유에서 비롯된다. 개인적 기준으로 <걸어도 걸어도>의 명장면은 엔딩 크레딧 장면이다. 가족의 지난한 하루가 지나고, 아베 히로시의 내레이션과 함께 3년의 시간을 점프한다. 이 시간, 나란히 계단을 오르던 아버지와 어머니는 없다. 아버지는 2년 뒤 세상을 떠나고, 어머니도 얼마 지나지 않아 곁을 따른다. 히로시는 자신의 가족과 함께 묘소를 찾는다. 의식을 치른 뒤 차를 타고 사라지는 히로시 가족의 모습을 카메라는 소실점 바깥까지 한참을 잡는다. 이 장면에서 카메라의 시선을 생각한다. 그것은 누구의 응시일까. 아버지, 어머니다. 고정된 시간과 공간, 시선 안으로 그리움, 애달픔이 맴돈다. 시선이란 이렇게 슬프다.

이런 사유는 <태풍이 지나가고>에서도 나타난다. 여러 명장면이 있지만, 한 가지 꼽자면 제목처럼 태풍이 지나고 난 뒤 아침 풍경이다. 아들 내외의 완전한 이별을 직감한 어머니가 연립주택 복도에서 멀리 사라지는 이들에게 인사를 건넨다. 보일 듯 말 듯 하이앵글로 잡은 키키 키린의 모습이 한 폭의 풍경화처럼 아련하다. 태풍을 지나 맑게 갠 아침의 시간으로 사라지는 순간, 관객은 생의 어떠한 지점이 흘러가고 있음을 느낀다. 묘하게 서글퍼지는 장면이지만, 마냥 슬프지는 않다. <걸어도 걸어도>가 지나온 회상한다면, <태풍이 지나가고>는 다가올 시간을 희망한다.

짧은 감상평으로 히로카즈 영화를 논할 수 없다. 그의 영화에는 이보다 많은 순간과 시간이 존재한다. 화려하지 않지만 오래 기억되는 어떤 순간들처럼, 히로카즈의 영화도 어떤 순간으로 기억된다. 한국에도 이런 감독이 많았으면. 블록버스터로 대동단결하는 한국를 보며 아쉬움을 느낀다. 윤가은 감독에게 기댄다. (한국만큼 가족 소재가 먹힐 곳도 없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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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고 싶은 것보다 하고 싶은게 많아요. 어느 순간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하고 싶을 걸 택할 겁니다. 삶은 짧고, 불확실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