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연극 ‘베서니’

자본주의 시스템 하에서 욕망은 ‘집’으로 수렴된다. 본질적 의미는 사라진지 오래다. 투기, 투자, 약탈의 대상이다. 19세기 맑스가 노동소외를 주장했다면 200년이 지난 지금, 집이 더해졌다. 노동을 통해 벌어들인 돈 대부분은 집에 집중된다. 그럼에도 내것이 아니다. 다수는 은행의 소유다. 2016년 말 기준 국내 가계부채는 1천344조원이다. 이 중 집을 주택담보대출의 비중이 40%에 달한다. 내가 집을 산게 아니라 집이 나를 삼킨거다.

연극 <베서니>의 주인공 ‘크리스탈’은 집에 대한 욕망이 극대화된 인물이다. 그녀에게는 집이 없다. 은행에 뺏겼다. 그녀의 딸 ‘베서니’도 정부에 뺏겼다. 살 집이 없으니 양육권도 없다. 은행과 정부에 집과 딸을 빼앗긴 뒤로 그녀의 화두는 집이다. 그녀에게 집은 단순히 거주할 공간을 넘어선 구원자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돈도 능력도 없다. 가진 것이라도 몸 뿐인 그녀는 도시 모퉁이 빈집에 숨어든다. 제 집인양 행세하기 위해서다. 그래야만 양육권 심사를 통과하고 베서니를 찾을 수 있다.

문제는 의도치 않은 곳에서 발생했다. 빈집이라고 생각한 그 집에는 이미 ‘개리’라는 노숙인이 점유하고 있었다. 크리스탈은 본래 자신의 집인 것처럼 둘러댔지만 개리는 호락한 인물이 아니다. 크리스탈의 어설픈 거짓말을 간파한 게리는 서로의 이익을 위해 가족으로 위장한다.

필요에 위해 말을 맞췄지만 두사람의 관계는 위태롭다. 연민과 증오, 질투, 환멸이 둘 사이에 동반한다. 두 사람을 파국에 빠뜨리는 인물은 ‘찰리’라는 사업가다. 그는 자동차 판매상에서 딜러로 근무하는 크리스탈 앞에 나타난 남자다. 그녀는 찰리를 잡고자 처절하게 분투한다. 차를 팔아야 일자리를 유지할 수 있고, 일자리가 있어야 베서니를 데려올 수 있다. 찰리는 그녀의 절박함을 이용해 그녀의 몸을 갖는다.

개리는 이 모든 과정을 목격한다. 그리고 혐오한다. 또 집착한다. 갈등의 정점은 찰리의 정체가 탄로난 다음이다. 성공한 사업가인 줄 알았던 그는 그저 쇠락한 중산층 가정의 가장이자, 실업자였다. 모든 건 그녀의 환심을 사기 위한 찰리의 거짓이었다. 크리스탈은 절망한다. 그녀를 차지하지 못한 개리도 절망한다. 두 절망은 파국으로 충돌한다. 집 이외 아무것도 남지 않는 원초적인 욕망은 집을 차지하기 위한 살인으로 이어진다. 개리를 살해한 크리스탈은 아무렇지 않게 그의 시체를 옮기고 집 안에 새겨진 범죄의 흔적을 지운다. 그리고 연극은 끝난다.

연극 <베서니>의 공간적 배경은 2008년 미국이다. 당시 미국 사회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위기를 겪었다. 국가를 믿고 빚을 내 주택을 샀던 대출자들이 갑작스런 고금리에 내몰리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에 내쫓겼다. 그럼에도 빈집은 넘쳐났다. 집 없는 사람, 주인 없는 집. 두 현실이 아이러니하게 엮였다.

이런 모순을 은유하기라도 하듯, 연극에 등장하는 모든 이들은 가난하다. 부자는 없다. 시종일관 크리스탈에 모욕적 언사를 해대는 매장의 상사 역시 가난하다. 이 가혹한 시스템을 가동하는 자본주의 체계는 최종 포식자로서만 비가시적으로 존재한다. 때문에 등장인물들은 공간을 장악한 적을 인지하지 못한다. 그들에게 적은 모든 가시적 존재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상태. 연극 <베서니>의 공간이다.

 

 

연극은 ‘제4의벽’이다. 당시 미국사회를 충실히 반영하는 또 다른 공간이 한국사회인 만큼, 관객과 무관하지 않은 사건임을 끊임없이 주지한다. 연극의 주요 마디마다, 해설자가 등장해 집의 의미와, 돈의 목적, 행복의 의미를 관객에게 묻는다. 하지만, 관객들로 하여금 직접적인 답을 이끌어 내지 않는다. 진행상의 편의로 보일 수도 있지만, 의도처럼 느껴졌다. 연극에서 벌어지는 비극과는 다른 긍정적 의미의 자본주의를 관객에게 묻기 때문이다. 극과 결코 동화되기 어려운 질문을 해설자를 끊임없이 관객에게 묻는다. 그럼으로써 관객의 위치를 객관적 입장에서 주관적 입장으로, 관람에서 체험의 위치로 옮겨놓는다. 현실이 나와 무관하지 않음으로.

무대 연출도 연극 <베서니>의 또 다른 성취 중 하나다. 제한적으로 사용된 조명, 점멸하는 등, 기괴한 소음. 모두 등장인물이 처한 상황과 불안한 내면을 들춰내는 효과적 장치로 사용됐다. 서스펜스를 극대화한다. 연극 <베서니>는 ‘극단 동’의 <자본주의 맨낯 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에 속한다. 약육강식의 자본주의 시스템 속에 살아가는 인간의 고뇌와 소외에 주목한다. 그러면서, 우리가 모르는 사이, 우리를 장악한 비인간적인 자본주의의 민낯을 드러낸다. 연극 <베서니>는 이 같은 목적에 충실히 부합한다. 관객은 이제, 체계의 거주자인 동시에 범행의 목격자다. 무엇을 택할지는 관객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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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고 싶은 것보다 하고 싶은게 많아요. 어느 순간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하고 싶을 걸 택할 겁니다. 삶은 짧고, 불확실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