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

인지자본주의 하에서 다중의 공통되기와 ‘정동’의 문제

(포스트포드주의 시대, 자본이 노동하는 대중에게 요구하는 자질로는,) 이동성에 대한 익숙함, 극히 돌출적인 전환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 능수능란하게 매사에 적응할 수 있는 능력, 어떤 규칙군에서 다른 규칙군으로 나아가는 이행에서의 유연함, 평범하면서도 다면적인 언어적 상호작용의 소질, 제한된 선택지 사이에서 무언가 갈피를 잡는 것에 대한 익숙함’ 등이 포함된다. 가변성에 대한 이 적응의 요구들은 메트로폴리스에서의 삶의 사회적 불안정성을 초래할 뿐만 아니라 생산에서의 불안정성을 초래한다. 가령 적시생산은 시장의 불안정한 수용에 공장이 유연하게 적응하는 불안정 생산의 형태다. 어떤 안정된 기반도 없이 상황의 비예측성에 대응해야 하는 생산에서의 이 정조를 비르노는 생산 속으로 들어온 허무주의라고 부른다.

조정환(2010), <인지자본주의 하에서 다중의 공통되기와 ‘정동’의 문제> p.358

김소영 교수의 <파국의 지도 : 한국이라는 영화적 사태>에 재인용된 구절이다. 조정환은 이 구문에서 사회학자 파올로 비르노의 <다중>의 구문을 인용했다. 임기응변. 글을 읽으며 떠오른 사자성어다. 국내 취업시장에서 노동자에 사용자가 요구하는 덕목이다. 때론 면접에서 테스트하기도 한다. 이는 또한, 고용계약이 체결된 이후에도 적용되며 반복적인 성과와 업적을 요구한다. 문제는 비르노의 설명처럼 가변성의 요구는 노동자로 하여금 불안정성을 초래한다. 그것은 결코 익숙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한 익숙함을 요구하는 행위다. 동시에 생산수단을 초월하는, 착취 이상의 착취 상황이기도 하다. 이는 누구도 의도하지 않았으며, 그 구조를 수면 위로 드러내기도 쉽지 않다. 그 자체로, 우리가 살고 있는 시스템이고, 메트로폴리스 안에서의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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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고 싶은 것보다 하고 싶은게 많아요. 어느 순간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하고 싶을 걸 택할 겁니다. 삶은 짧고, 불확실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