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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국가라는 어떤 시스템. 영화 ‘교사형’

 

영화 <교사형>

 

<교사형>(1968)은 참여의 영화다. 관객은 응시의 주체이자, 형장의 참관객이다. 영화가 시작할 때부터 끝날 때까지 형장 내 관객의 자리는 시선으로 존재한다. 극 초반 “여러분은 사형제도 폐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는 뜬금없는 질문과 설명은 집행에 관객을 몰입키 위한 일종의 유도장치다. 언뜻 사형제도의 윤리를 묻는 것처럼 보이지만 영화는 그 차원을 벗어난다. 영화 <교사형>은 제도의 근간 더 정확히 국가라는 시스템의 확장으로 사형제도의 모순을 들여다본다. 때문에 감독의 논의는 인권에 입각한 ‘사형제 폐지’가 아니다. 영화는 그보다 훨씬 사적인 동시에, 근본적인 사유의 결과물이다.

재일조선인 이진우

영화 <교사형>은 알려진 대로 1958년 도쿄 에도가와구 코마츠카와 고등학교에서 발생한 실제 사건을 모티프로 한다. 초현실적인 플롯을 제외하고 철저히 ‘사실’에 근거한다. 극중 사형수 ‘R’은 재일조선인 고등학생 ‘이진우’가 모델이다. 그는 일본제국주의의 광기가 정점에 달하던 1940년 도쿄의 한 마을에서 강제징용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당시 재일한국인의 운명이 그랬던 것처럼 온갖 차별과 편견, 폭력과 학대 속에서 불우한 유년을 보냈다. 사회의 그늘에서 남몰래 분노와 적개를 쌓아오던 그는 19세가 되던 1958년, 고등학교 옥상에서 책을 읽고 있던 여학생을 살해하고, 시체를 유기한다. 며칠 뒤, 그는 한 언론사에 연락해 자신이 살인을 저질렀다고 주장하며, 시신유기 장소를 알린다. 지목한 위치에서 시체를 발견한 경찰은 이진우를 유력한 용의자로 수배하고 범행 한 달 만에 체포한다. 추궁 과정에서 이진우는 여학생 살인 넉 달 전인 그해 4월, 또 다른 여성을 살인했다고 자백한다. 이듬해 재판에 넘겨진 그는 1심과 2심에서 각각 사형을 선고받는다.

이 사건은 당시 일본사회 격렬한 논쟁을 불러온다. 정당성에 관한 문제였다. 일본의 지식인들은 “이진우 사건의 배후에는 일본사회의 왜곡된 인식이 있다”며 일본사법부의 신중한 판단을 요구했다. 또 강제징용의 결과로서 국적인 씌여진 재일한국인에 대해 일본사법주가 자국의 법에 의해 범죄의 책임을 물을 수 있는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일었다. 하지만 지식인 사회의 목소리는 관철되지 않았다. 논쟁도 오래가지 못했다. 그는 최고심도 가지 못한 채 1962년 8월 사형을 당한다. 그리고 이진우 사후 6년. 오시마 나기사 감독은 <교사형>을 내놓는다.

R은 어떻게 R이 되는가

오시마 나기사 감독은 사유를 위해 독특한 플롯을 첨가한다. 사형집행에도 불구하고 R이 죽지 않은 것이다. R은 죽지 않고, 과거의 기억만 삭제된 채 깨어난다. 직접적인 범죄의 기억이 사라지면서 재집행의 정당성도 흩어진다. 형장의 집행자들은 R을 다시 범행의 주체로 돌려놓기 위한 재연의 임무를 맡는다. 기억의 주체가 소환돼야 범행을 인과를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극 초반, 형장을 지배한 엄숙과 장엄은, 위 플롯과 맞닥뜨린 시점에서 모순을 드러내며 부조리극으로 변한다. 인물들이 자리한 형장 역시 집행의 공간이 아닌 재판의 공간으로 차원을 달리하게 된다. 그제서야 관객은 판결문 바깥, 삭제된 R의 삶에 대해 귀를 기울이게 된다.

영화는 모두 7개의 장으로 구성돼 있다. 각각의 장은 ‘1. R의 신체가 사형집행을 거부하다’, ‘2. R은 R이란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3. R은 R을 타자로 인정하다’, ‘4. R은 R이기를 시도한다’, ‘5. R은 조선인으로서 변명된다’, ‘6. R은 R이란 사실에 도달한다’, ‘7. R은 모든 R을 위해 R을 받아드린다’고 명명됐다. 제목에서 느껴지듯 <교사형>은 기억을 잃은 R의 존재 부정에서 인정으로 도달하는 과정을 그린다. 그렇다면 R은 어떤 과정을 거쳐 자신을 존재를 자각하게 되는가?. 주요한 매개는 ‘주입’이다. 주입은 타의성을 전제한다. 주입의 주체는 공간을 지배한 재연의 주체다. 영화에서 과시되듯 묘사되는 재연의 주체들은 검사, 사제, 의무관, 교도소장, 보안과장, 교육과장, 사무관 등 체제의 수호자들이다. 이들의 지상과제는 R의 기억을 되찾고, 그를 다시 사형대로 올려놓는 일이다. 이 같은 설정은 그 자체로 은유적이다. R이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괴물’이 된 것과 같은 방식으로 재연이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관객은 재연과 동격의 폭력의 실체를 체감하게 된다. 폭력은 집행자의 발언을 통해 또 다른 아이러니를 드러내기도 한다. ‘살인’이라는 R의 ‘반 인륜적’ 범행을 재연하면서도 과거 자신들이 저지른 전쟁범죄에 대해서는 정당화하는 이중성을 보인다.

관객은 퇴장할 수 있는가

R은 누나의 환영이 등장하면서 진실과 맞딱뜨린다. 상상적 존재(실제 공간에는 없는)인 누나는 R의 무의식인 동시에 뿌리다. R이 삼킨 빨간약은 거짓된 국가 시스템 바깥의 진짜 ‘나’를 안으로 소환한다. 그리고 거짓의 시스템이 폭로된다. R이 아닌 나로서 주체성을 획득한 순간, 그는 사형집행을 거부한다. 하지만 깨달음은 덧없다. 시스템 안의 진실은 공허하다. 빨간약을 삼켰으나 파란약의 세계에선 무력하다. 형장 밖의 그를 기다리는 건 더욱 강화된 시스템이다. 그가 전진하지 못하고 움찔하는 사이, 국가로 대변되는 형장의 권력자 ‘검사’는 이렇게 일갈한다.

“R, 거기서 왜 멈췄는지 알겠나. 밖에는 국가가 있다. 여기도 국가가 있다. 국가가 안보인다고 했지. 이제는 봤겠지. 달아날 수 없는 존재다. 자네 머릿 속에는 국가가 존재하는 한 자네는 유죄다.”

벗어날 수 없는 시스템의 존재를 깨달은 그는 죽음을 택한다. 첫번째 집행과는 다르다. 그는 스스로 사형대에 선다. 그는 죽음으로 이 거대한 시스템을 탈주한다. 이 순간, 죽음은 끝이 아닌 시작이 된다. 오시마 나기사는 시스템의 살인에 관객을 증인으로 세운다. 재판에 관객을 초대한 이유다. 영화 <교사형>은 오시마 나기사 감독의 대표작 <감각의 제국>(1976)의 흐름에 놓인 작품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영화 <교사형>이 학살의 원죄에도 성찰되지 못한 시스템의 포악성을 고발했다면 <감각의 제국>은 그 욕망의 근원을 거세한다. 이는 반세기가 지났음에도 반성 없는 일본사회에 대한 감독의 단죄다. 그럼에도 일본은 여전히 욕망한다. 감독이 초대한 관객은 아직 형장에 있다.

오시마 나기사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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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고 싶은 것보다 하고 싶은게 많아요. 어느 순간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하고 싶을 걸 택할 겁니다. 삶은 짧고, 불확실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