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Beethoven – Symphony No.7 in A major op.92 II. Allegretto

베토벤 교향곡 7번은 이상하게 마음을 끈다. 그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2악장 ‘Allegretto’다. 우리말로 ‘약간 빠르게’로 번역되는데 곡을 들으면 이해된다. 2악장의 악기는 비올라와 첼로, 콘트라베이스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들 위주로 연주된다. 콘트라베이스의 반복된 굵은 선율 사이로 새어나오는 비올라와 첼로의 점층하는 음들이 인상적이다. 여기서 말할 건 음악이 아니다. 2악장이 쓰인 영화다. 정확히 수치는 모르지만 베토벤의 교향곡 7번 중 영화에 가장 많이 쓰인 악장이다. 아마 이게 베토벤 교향곡 중 유독 마음을 끄는 이유겠지만, 곡 특유의 웅장한 분위기도 몫을 한다. 비장하면서도 세련되고, 고전적이면서도 때론 진취적이다. 음악을 들으면 올더스 헉슬리의 소설 <멋진 신세계>의 한 부분이 떠오르기도 한다. 하지만 유토피아보다 디스토피아에 가까운 세계. 그만큼 매력적이다.

2악장은 곡의 정서에 맞는 영화 장면에 주로 쓰였다. 특이한 건 장면 대부분 2악장의 속도와 영화 프레임이 동일하게 배치된다는 점이다. 음악의 속도에 맞춰 슬로우-모션에 인용됐다. 영화적으로 슬로우-모션은 몰입감과 더불어 관객에 감정적 동일시를 이끌어 낸다. 동시에 제의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한다. 2악장의 분위기도 꼭 그렇다. 영화를 치밀한 계산의 결과물이라고 한다면 음악을 고려해 장면이 연출됐음을 추측할 수 있다.

 

 

2악장의 영화 중 대중적으로 알려진 작품은 <킹스 스피치>(2010)다. 말더듬이 왕인 조지6세의 마지막 연설 장면에 재생된다. 성장의 과정에서 일종의 의례성을 띠고 음악이 사용됐다. 긴장되면서 비장함이 느껴진다. 이 장면 역시 느린 화면으로 짜여졌다. 동시에 다양한 인서트가 흐른다. <킹스 스피치>처럼 대중적인 영화는 아니지만 가장 많이 거론되는 영화는 타셈 싱 감독의 <더 폴>(2006)이다. 기괴하면서 아름다운 영상미, 독특한 세계관으로 컬트 영화의 반열에 오른 작품이다. 2악장은 영화의 오프닝에서부터 영화의 종반까지 몇 차례 반복된다. 특히 유명한 장면은 오프닝 시퀀스다.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인상적인 오프닝으로 꼽힌다. 흑백 톤의 느린 화면 사이로 분주히 운동하는 물체, 과장된 클로즈업, 인물들의 기괴한 움직임이 2악장과 함께 나열된다.

 

 

근시점의 두 작품을 골랐지만, 2악장을 다시 떠올리게 한 건 사실 최근 개봉한 한재림 감독의 <더 킹> 때문이다.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슬로우-모션에 쓰였다.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반드시 뇌리에 박힌다. 한강식 일당에 친구를 잃고, 팽을 당한 채 절망에 사로잡힌 태수의 전경 앞으로 노무현 대통령의 노제가 흐른다. 그리고 2악장이 연주된다. 이 장면에서 2악장은 진혼곡, 일종의 애도로 쓰였다. 죽은 친구에 대한 슬픔, 무기력한 분노, 속죄. 그리고 한강수 일당의 신세계. 악이 득세하고 정의가 사라진 한국사회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씁쓸하게 전달한다. 인상적인 장면이다.

따로 언급하지 않겠지만 개인적으로 2악장이 쓰인 영화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소노 시온 감독의 <러브 익스포저>다. 러닝타임만 4시간에 달하는 이 작품은 폭력, 살인, 소외, 사이비 종교 등 일본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비극적인 가족사의 프레임에 녹인 영화다. 이 밖에도 소노 시온의 <지옥이 뭐가 나빠!>와 <엑스맨 : 아포칼립스>, <노잉> 등의 영화에서도 2악장을 만날 수 있다. 하나같이 다 인상적이다.

되고 싶은 것보다 하고 싶은게 많아요. 어느 순간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하고 싶을 걸 택할 겁니다. 삶은 짧고, 불확실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