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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추억의 마니, 지브리 과거와 미래 어딘가

지브리의 작품은 참 묘하다. 동화적이면서, 때론 기괴하다. 진중하면서도 가볍다. 어떤 작품은 광원(光源)의 각도와 빛 온도까지 계산된 리얼리즘의 작화를 고수하면서도, 어떤 작품은 지나치게 ‘현실’이 간과된 ‘판타지’에 무게를 싣기도 한다. 85년 설립 이후 30년 간 지속한 지브리 왕국의 역사에는 분명 두 가지의 흐름이 존재한다. 이는 포스트 미야자키를 고민하고 있는 지브리의 고민과도 맞닿아 있는 부분이다.

<추억의 마니> 지브리의 어떤 변화

흐름의 근저에 신작 <추억의 마니>가 있다. 지브리의 20번 째 장편 애니메이션이다. 무엇보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은퇴와 지브리 해체 선언 이후 발표된 작품이라는 점에서 여러 의미를 지닌다. 그만큼 작품 속에 고심과 고민이 묻어난다. 이 작품은 서사와 구성 측면에서 전작들과 궤를 달리한다.

<추억의 마니>는 현실과 상상, 그 중간 영역에 놓였다. 기존 지브리 작품이 현실과 가상의 범주를 나눠 일관되게 한쪽 영역을 담아냈던 것과 다르다. 가령 <모노노케히메>(1997)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2001) <벼랑 위의 포뇨>(2007) 처럼 ‘상상’의 차원에 머물다가 <추억은 방울방울>(1991) <귀를 기울이면>(1995) 같은 ‘실제’의 일상으로 회귀하는 방식이다.
구성과 작화를 달리할 뿐 작품 자체는 지극히 ‘지브리’ 스럽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특유의 메시지나 분위기는 없다. 다만 감수성 높은 이야기와 완성도 놓은 작화에 기댄다. 2D 애니메이션의 아날로그적 감성을 이어가면서도 환상적이고,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는 것도, 고퀄리티의 작화 덕분이다.
이는 <추억의 마니>의 감독 ‘요네바야시 히로마사’의 전작 <마루 밑 아리에티>에서도 두드러지는 분위기다. 거대한 사건이나 사고 없이 주인공을 중심으로 미세하게 변화하는 감성의 파동을 포착한다. 이런 스타일은 초기 미야자키의 명작 시리즈 <빨강머리 앤> <작은아씨들>의 지배적 감수성이기도 했다.

선명과 몽환, 두 흐름

<추억의 마니>는 영국작가 ‘죠앤 G. 로빈슨’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알려진 대로 이 작품은 이미 10여년 전에 미야자키가 애니메이션화를 결정했으나 마땅한 감독이 없어 무기한 보류됐던 작품이다.
세상과 단절한 12살 소녀 ‘안나’가 금발의 수수께끼 소녀 ‘마니’와 비밀스러운 만남을 시작하면서 발생하는 이야기를 그렸다. 두 소녀의 만남은 조각배 위, 안개 낀 숲 속, 저녁에만 불이 들어오는 저택으로 이어진다. 각 배경은 허름함과 호화스러움, 선명과 몽환을 넘나든다.
‘강’ 하나를 두고 실제와 상상 사이를 오가는 극중 ‘안나’를 보고 있자면 지금의 ‘지브리’의 상황과도 묘하게 오버랩 된다. 이 작품 안에서 지브리의 ‘희망’을 볼지, 아니면 ‘망조’를 볼지는 전적으로 관객 몫이다.

되고 싶은 것보다 하고 싶은게 많아요. 어느 순간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하고 싶을 걸 택할 겁니다. 삶은 짧고, 불확실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