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 희대의 괴작

영화는 시대의 아픔을 반영한다. 우리가 무심코 흘려보낸 시대의 한 풍경을 미학으로서 재현한다. 때론 직설적으로, 때론 은유적으로…. 두 개의 극단은 현대사의 아픔을 표출하는 우리들의 표정과도 닮아있다. 그런 면에서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이하, 나그네)는 무표정한 영화다. 저주처럼 나열되는 죽음과 이별의 반복에도 주인공은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한다. 그래서 더 슬픈지도 모르겠다. 알려진 대로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는 분단의…

영화 ‘연애담’ 아쉬운 디테일 – 같이 걸을 순 없을까? (스포)

반가운 소재다. 영화를 보기 전 손짓부터 하게 된다. 우리 문화에서 레즈비언 소재 영화는 또 다른 금기였다. 사실, 적지 않은 퀴어(Queer) 영화가 있지만 절대 다수는 남성 중심의 게이 영화다. 내 기억이 맞다면 장편 퀴어 영화에서 레즈비언을 단독으로 내세운 작품은 두세편에 불과하다. 대부분 주인공은 남성이고, 여성은 주변이였다. 소수의 영역에서도 여성은 소수였다. 그만큼 우리 안의 보수성은 깊고, 은밀하다.…

연극 ‘민중의 적’ 과장된 붕괴 – 희석된 문제의식

연극 <민중의 적>을 보면서 불편한 감정이 들었다. 그것은 연극 자체의 문제이기보다 대상의 문제다. <민중의 적>은 솔직하다. 직설적이고, 명료하다. 드러내고자 하는 지점이 매우 뚜렷하고, 선동적이다. 그것은 연극의 헤드카피 ‘다수는 항상 옳은가?’에서도 과시하고 있는 부분이다. <민중의 적>은 다수결의 원칙으로 쌓아올린 ‘민주주의의 신화’를 작품 속 사건과 인물을 통해 위력적으로 파괴한다. 연극의 주요한 서사방식은 ‘제시’다. 그리고 ‘참여’다. 후자에 이 연극의…

영화 ‘자전거도둑’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안토니오의 삶의 화두는 가족의 생계다. 하지만 만만치 않다. 막노동부터 허드렛일까지 이것저것 마다않고 해봤지만, 살림은 좀처럼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20세기 시작과 함께 두 차례 연쇄한 전쟁의 화마는 안토니오 주변의 모든 터전을 폐허로 만들었다. 종전 후 남은 것이라고는 기록적인 실업과 극도의 빈곤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안토니오에게 뜻밖의 기회가 찾아온다. 도시 곳곳에 홍보전단을 붙이는 정규직(?) 일자리가 주어진…

영화 ‘경멸’ 고다르 – 자아 혹은 타자의 반영

  경멸의 자기반영 어떤 영화는 화면 안에만 머물지 않는다. 가상과 현실을 구분하지 않는다. 두 세계는 동질적이면서도, 이질적이다. 끝없이 서로를 반영하지만, 또한 끊임없이 충돌한다. 접점을 찾을 수 없는 접점. 이른 바, 고요하지 않은 ‘냉전’(冷戰)의 상태. 고다르와 그의 영화가 직면한 특유의 상황이다. 영화 <경멸>(Le Mepris)의 리뷰 전에 살펴볼 것이 있다. 그가 인접한 세계다. 고다르의 누벨바그(Nouvelle Vague)는 기존의…

추억의 마니, 지브리 과거와 미래 어딘가

지브리의 작품은 참 묘하다. 동화적이면서, 때론 기괴하다. 진중하면서도 가볍다. 어떤 작품은 광원(光源)의 각도와 빛 온도까지 계산된 리얼리즘의 작화를 고수하면서도, 어떤 작품은 지나치게 ‘현실’이 간과된 ‘판타지’에 무게를 싣기도 한다. 85년 설립 이후 30년 간 지속한 지브리 왕국의 역사에는 분명 두 가지의 흐름이 존재한다. 이는 포스트 미야자키를 고민하고 있는 지브리의 고민과도 맞닿아 있는 부분이다. 흐름의 근저에 신작 <추억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