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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폐허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당나귀 EO> 라는 영화를 봤다. 당나귀가 주인공인 영화다. 서커스단이 해체된 후 인간 세계로 떠밀려 나온 EO의 로드무비다. 제75회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받았다. 샤를로트 반더히르미 감독의 <여덟 개의 산>과 공동 수상했는데 이것도 얼마전에 봤다. 둘 다 훌륭한 작품이다(취향은 후자…). 상세한 감상은 나중에 하기로 하고, 영화를 보면서 다른 작품이 떠올랐다. 지난달에 본 박세영 감독의 <다섯 번째 흉추>. 제목이 괴기스럽지만 지독히도 낭만적인 영화다. 떠오른 이유는, 주인공의 정체때문이다. 생뚱맞게도 침대 매트리스에 핀 곰팡이다. 이 역시 로드무비다. 재차 버려지고, 재차 새주인을 맞고. 피를 먹고 자란 곰팡이는 인간 세계의 사랑과 증오와 환멸을 목격한다. 당나귀 EO든 매트리스 곰팡이든 그들이 살핀 우리의 모습은, 신비롭지도 아름답지도 않다. 길에서 고양이들을 만나면 그런 생각이 든다. “저 아이들이 본 이곳은 어떨까”. 시선을 옮기면 문득 허무해진다. “여긴 아무 것도 없어”라고 말하는 것 같달까. 근래 중동에서 벌어진 참상을 보면서 마음이 더 그렇다. 공포에 질린 아이들을 볼때마다 숨이 툭 끊긴다. 비극은 언제나 아이들과 여자들의 몫이다.

영화 <당나귀 EO>의 한장면. 이 영화와 정서적으로 연결된 작품은 알리체 로르와커 감독의 <행복한 라짜로>이다. 특히 결말이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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